✍️ 외로움 의제공론장 돌아보기

총괄관리자
발행일 2023-09-18 조회수 877

나날이 바람이 선선해지는 9월의 어느 날, 서로의 문제를 함께 읽어보자는 따뜻한 마음으로 붐비는 저녁이 있었습니다. 서울시 공익활동지원센터가 주관하고 시민들이 참여한 <외로움: 사회적 방임> 의제공론장의 열기를 나누어 봅니다.

 


 

두 번째 의제인 '외로움'은 신선한 주제였습니다. 공통의 과제로서 외로움 자체에 주목해 보자는 시선이 반가웠습니다. 혼자만의 반가움이 아니었는지, 공론장에는 예상한 정원을 뛰어넘는 인원이 모였습니다. 이날의 자리는 공익활동 바자회 소개에 이어서 사전질문 답변을 살펴보며 출발했습니다.

 

 

어떤 기대로 신청하게 되었는지를 묻는 데에는, 평소 외로움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제와 관련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해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없음’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습니다. 누구나 문제를 느끼지만, 일상에서 선뜻 거론되지는 않는 외로움 문제를 잘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발제는 외로움과 연결이라는 고민을 두고 활동해 온 ‘수상한 협동조합’의 조영진 님과 ‘니트생활자’의 박은미 님이 맡아주셨습니다. 각각 “외로움의 시대, 문화공동체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와 “무업기간의 관계망이 고립에 미친 영향 - 니트컴퍼니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쉼 없는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사회적 면역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 발제는 경험담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탈진 상태로 직장을 그만둔 후 칩거와 고립의 상태를 이어가던 조영진 님 안에서 변화의 틈을 낸 건, 사라져가는 마을 공공의 공간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은 악기, 댄스, 대화 모임으로 이어졌고, 문화를 통해 이웃과 연결되고 회복하는 시간을 만나셨다고 합니다.

 

이 경험이 금천문화재단의 연구수업 참여로 이어지면서, ‘문화안전망’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고립을 막는 안전망으로서 문화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는 다시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민주주의 활동가 학교를 통해 ‘청년 외로움,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외로움을 다룬 뉴스 기획 영상을 함께 시청하는 동안, “한국은 가장 외로운 나라 중 하나”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외로움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여 정책적인 지원을 도모하는 영국이나 일본의 사례도 스쳐 갔습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심리학회가 함께 외로움의 방안으로 문화정책을 논의했습니다.

 

 

특히 산업단지가 있는 금천구에서는 청년층의 높은 우울증 유병률에 주의를 기울이며, 다양한 지원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층은 특히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지만, 가장 외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수상한 협동조합은 금천형 연결사회 지역거점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예시로 소개된 ‘도토리학교’에서는 여러 방면의 프로그램을 각양각색의 도토리로 기획하여, 참가자가 자신에게 맞는 도토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구체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에서 제도적 기반 마련, 관계망 형성, 전문가 연계 지원 등을 위한 고민이 느껴졌습니다.

 

 

발제는 공론장에서 새로운 지혜를 구하는 중이라는 말씀과 함께 마무리되었습니다. 문화나 예술이라는 영역은 종종 필수가 아니라 여겨지지만, 인간다운 마음의 빈자리를 메우는 건 바로 그러한 힘일지 모릅니다. 이렇듯 문화적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과 활동가들, 그리고 금천구라는 공간의 협력이 타지역으로도 번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지하는 사람이 시도하는 사람을 만든다 

이어진 니트컴퍼니의 발표는 어느 청년들의 진심 어린 토로를 인용하며 시작되었습니다. 구직에 실패한 날, 화창한 날씨 안에서 홀로 느끼는 깊은 외로움이나 그저 말이 하고 싶다는 마음, 구구절절 자기를 소개할 필요가 없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향한 갈망 등에 문장마다 가슴 저린 외로움이 녹아 있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능력으로 결정짓는 게 당연하다는 듯 여기는 사회입니다. 박은미님은 취직하지 않거나 못한 채 잠에 빠져있거나 무기력한 청년을 두고, 사람들이 쉽사리 이를 게으름과 의지 부족으로 판단해 버린다고 지적합니다. 다음의 질문으로 상태를 다시 진단합니다. “이 청년에게 잠을 잔다는 건, 외로움을 다스리는 생존 전략이지 않았을까요?”

 

취업 준비 중이거나 실업과는 다른 무업 상태 청년은 쉽게 고립됩니다. 가족과 이웃이 희박해진 오늘날, 자연스럽게 학교와 직장을 중심으로 사회생활이 이루어집니다. 일과 일터에서의 소외는 소득에서의 배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배제가 됩니다. 달리 말하면 소득이 없는 무업청년은 자신을 설명할 방법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관계망 축소는 경험, 정보, 기회, 신뢰 등 무형자산의 상실 또한 불러옵니다. 결국 무업 상태에서는 고립 속에서 자신감의 상실, 조급함, 불안감을 겪기 쉽습니다. 실패와 재은둔을 반복하면서 일상이 불규칙해지고 건강이 나빠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면접장에 가거나 시험 준비를 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니트컴퍼니는 가상의 ‘회사놀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백수들이 운영하는 가상 회사에서, 무업청년들은 나를 돌보는 일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마음이 쫓기는 상태를 잠시 내려놓습니다. 매일 자신만의 만들어 가며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나 일상을 주체적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합니다.

 

니트컴퍼니에 다니는 100일, 이 시간의 핵심은 ‘연결’이라고 합니다. 청년들은 회사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하듯 피드백을 주고받게 됩니다. 서로의 시도를 응원하고 칭찬합니다. 외로움과 고립감 대신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낍니다. 정해진 길 바깥에 있는 삶의 모습을 알아가고, 그저 자신의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합니다.

 

 

100일이 흘러 니트컴퍼니를 퇴사한 청년들은 당장 직업이나 돈이 되지 않더라도, 자기 일과 삶을 창조적으로 꾸려가기 시작합니다.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글을 쓰고, 워크숍을 열게 된 청년들도 있습니다. 한때 니트컴퍼니 사원으로 참여했던 청년이 수년 후 운영진으로 참여하거나, 경제활동을 시작하여 니트컴퍼니를 후원하기도 합니다.

 

삶이 멈춤 상태에 있는 것만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 청년들에게 지지와 연결이라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니트컴퍼니의 목표는, 결국 서로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방법은 누가 손을 내밀어 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날의 발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촘촘한 연결 속에서 미끄러지는 외로움을 위해

발제 이후 참가자 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간단한 자기소개 키워드와 공론장에서 기대하는 바, 그리고 ‘외로움과 고립의 차이’ 또는 ‘내가 생각하는 외로움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포스트잇에 각자의 생각을 적고 나누면서, 이때부터 열띤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각 테이블에서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취재와 더불어 참가한 테이블에서 나눈 내용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고립이라는 주제는 모두 문제라 인식하면서도 정작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사사롭게만 여기는 만큼, 외로움에 대해 말하기 전, 자신의 외로움이 ‘정상’인지부터 고민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동시에 공론장을 준비해 온 이들의 우려와 달리 정작 외로움을 논하는 공론장의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첫 번째 포스트잇을 한 데 붙인 뒤 이어진 주제는 ‘고립에 빠지기 전 어떤 신호들이 있을까요?’였습니다. 답변으로는 우울, 불안, 피해망상, 낙담, 무기력, 좌절, 중독, 피로감, 건강 악화와 같은 키워드가 공통적이었습니다. 거절을 당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먼저 타인을 거절하게 되는 경향을 짚기도 했습니다. 고립이란 결국 포기의 굴레일지 모릅니다.

 

 

마지막 주제는 ‘고립으로 가기 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요?’라는 실질적 해결책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속마음을 꺼낼 수 있는 공간, 정책과 지원 대한 정보 교육, 증명이 되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각 연령대에 맞는 외로움을 살피고, 자랑을 자제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조별로 소감을 공유하는 시간에는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라는 점을 알게 되어 좋았다는 감상에 함께 공감을 표했습니다. 문제 인식에서 해결이 시작되는 만큼, 이렇게 외로움을 구조적 문제로 함께 인식했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희망 또한 나누었습니다. 이 자리 자체가 무척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외로움과 손잡으며 외로움 넘어서기

이날의 발제에서 등장한 ‘문화안전망’이나 ‘회사놀이’ 같은 단어는 다소 낯선 느낌을 줍니다. 문화와 안전망, 회사와 놀이라는 단어는 제각기 서로 동떨어진 말처럼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는 창의력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이어지는 토론은 그러한 상상력을 나누어 보는 자리였습니다.

 

 

논의 테이블마다 갈수록 고조되는 화기애애한 열기에 몇 번이나 논의 시간을 연장해야 했습니다. 여러 활동가와 시민이 모였고, 시민 안에서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모인 만큼 논의의 폭이 넓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논의가 거듭되면서 점차 개인의 경험담에서 정책과 담론으로 생각이 확장되는 과정도 느껴졌습니다.

 

이 공론장은 이날 하루에 그치지 않는 여러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 자조모임을 형성하거나, 센터에서 이뤄지는 여러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곧바로 지역의 정책 제안이나 공공캠페인 활동으로 연계되도록,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와 함께 정책 제안서를 작성하는 길도 있습니다.

 

세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진 발제와 토론을 마치며, 이러한 공론장 자체에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이블에 앉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들과 만날지 알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발걸음을 옮긴 덕분에 낯선 이들과 함께 외로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과 노년이 아니어도 실은 모두가 외롭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 안의 약한 부분을 털어놓고 서로의 외로움을 돌아보는 시간이 소중하고 반가웠습니다. 서로 다른 이들이라도 서로 닮은 외로움을 품고 있다는 깨달음에서, 비로소 외로움을 넘어서는 연결과 활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시간을 내어 공론장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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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 이다솜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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